국립국악원 고려가무 공연 후기
볼 맛 나는 요새 국악원 공연이다. 최근 모 교수님과도 이야기했지만, 최근 국악공연의 퀄리티가 더욱 높아진 느낌이랄까. 나야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전에도 좋아했지만, 코로나 이후 본 국악 공연들은 확실히 이 전과 비교하여 기획+연출+실연 전반적으로 월등하게 좋아졌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일반 대중들도 보기 좋은 느낌?
고려시대 음악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변형된 경우가 많은 데에다가 당대의 기록(악보)도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어 당대의 음악을 '그대로' 감상하기란 어렵다. 때문인지 이 공연도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정재를 해체하고 현대의 해석을 더해 만든 공연이다.
*정재: 궁중이나 지방 관아에서 향유된 여령이나 무동이 공연하는 악가무 종합예술.
프로그램은 오양선, 수연장, 동동, 포구락, 무애, 연화대, 무고, 헌선도로 구성되었다.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재해석한 덕인지 정재 별 이름에서 오는 익숙함의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그 내용은 모두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이 중에서도 동동의 경쾌함, 연화대 속 학무, 무고의 멋들어짐은 단연 최고였다. 포구문에 채구를 던져 넣는 놀이적 요소가 포함된 포구락의 연기도 좋았다.
또 다른 포인트는 정재에 수반되는 노래를 한글로 풀었다는 점이다. 정재의 창사, 구호, 치어 등은 (대체로) 한자로 되어있기 때문에(+길게 늘려 부름) 그 내용을 소상히 알기가 어렵고, 이러한 점은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이는 사람들이 국악의 성악 장르 중 정가를 가장 어렵게 여기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한글로 풀어 부르다 보니, 그 내용을 알기 쉬워 정재의 스토리를 즐기기에도 좋았다.
음악은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 많이들 착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옛 음악이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태초의 상태로 전해진 것은 아니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혹은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음악은 변화하였고, 단절의 위기에 겨우 돌아오거나 전통적 요소를 기반으로 아예 근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도 있다. (흔히 아는 장구춤, 부채춤 등은 20세기 중반에 창작된 신무용!) 따라서 옛 음악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숨 쉬는 음악을 만드는 것도 현시대를 사는 예술인들의 과업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공연은 정재의 역사성을 가져가면서도 지금의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획과 연출을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공연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국악원 공연은 뭐 볼지 벌써부터 고민될 정도로. (이제 아쉬운 점은 좋은 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뿐... 더 넓은 공연장에서 하거나 공연 일수를 늘려주시면...안될런지...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