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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지막을 보내는 난장의 밤, 국립국악원 나례 공연 후기

라온티티 2024. 12. 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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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에 2024년 본 블로그에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 국립국악원 공연들...ㅎㅎ 그만큼 만족도가 높았다는 방증 아닐까.

 



  이번에 본 공연은 <나례>이다. 쉽게 '귀신 쫓는 의례'라 할 수 있는데, 섣달 그믐날 궁궐이나 관청, 민간에서 가면을 쓴 사람들이 도구와 주문을 통해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고 태평한 신년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인 셈이다. 관련 기록은 고려 정종 대부터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인 삼국시대부터 행했다고 한다. 
*나례의 시초는 중국 주나라의 나(儺) 문화로, 당나라 이후 예의 격식을 갖추며 '나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한 명칭을 사용한다.
 
  독특한 점은 나례가 조선시대 계층간 문화교류를 가능하게 했던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는 점이다. 궁정 나례의 경우, 궁 안부터 궁의 외곽, 혹은 성문 밖에서도 관람을 가능케하였고, 도상 나례는 영접의식과 우리나라 고유한 민간 공연 문화(광대 잡희)가 결합되면서 형성된 형태였다. 이러한 나례의 특징은 이번 공연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례> 포스터(근데 포스터보다 팜플렛 표지 디자인이 더 이쁜 것 같은.. 속닥속닥)


  국립국악원의 <나례> 공연은 4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 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고천지(告天地): 나례의 시작을 고하다.
2. 세역신(說疫神): 역신을 달래다.
3. 구나희(驅儺戱): 놀이로 역신을 쫓다.
4. 기태평(祈太平): 평안한 신년을 기원하다. 

  다만, 이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구분에 가까운 형태로, 각 장 별로 분절이 확실하거나 인터미션이 있는 것은 아니라  이어지는 흐름대로 공연을 즐기는데 무리는 없었다.

  앞서 말한 듯이 나례는 궁정 공연 문화와 민간 공연 문화가 교류하며 발전했고, 의식적 의미 또한 컸기 때문에 이를 담은 <나례> 공연 역시 볼거리가 넘쳐났다. 궁중 음악부터 민간 연희패, 기존 국악 공연에서는 보기힘들던 사방신, 방상시, 십이지신, 진자를 테마로한 무용까지! 그야말로 국립국악원+송년공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스케일이었다. 
*방상시: 나례와 장례 행렬에서 악귀를 쫓아내는 신. 귀신을 보는 4개의 눈을 가졌다. 
*진자: 나례의 중심이 되는 역귀 역할의 아이들. 붉은 옷을 입고 가면을 쓴다. (단, 본 공연에서는 역귀 역할을 성인이 대신하고, 아이들은 흰옷을 입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든채로 동요를 부름으로써 역신들을 항복시킨다.)

  시국을 꼬집은 풍자와 적절한 막의 사용도 눈에 띄었다. 결국 물리쳐야하는 역신에는 현대의 병폐도 포함되니, 공연의 주제가 무대를 넘어 사회를 잘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궁궐의 밤을 보여주는 미디어아트와 화려한 불꽃놀이는 의식의 확장을 불러와 '정말 내가 궁궐에서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내내 '조금 축약한 형태라도 공연장이 아닌 외부에서 진행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대 전환과 안전 등의 측면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기치 못한 연말의 축제가 되어줬으면 하는 느낌이랄까? ㅎㅎ(약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요괴대작전처럼!)

  다만, 4장 기태평 부분은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앞에서 너무나 잘 끌어온 공연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긴 불꽃놀이와 이후 이어진 향아무락이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 무대 자체는 좋았는데, 정신 없이 즐기던 공연이 끝나기 직전에 단절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품격있게 마무리 짓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화려하고 에너지 있는 마무리로 기억을 강렬하게 남겼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의 의견...ㅎㅎ

  그래도 <나례>는 독특한 소재, 큰 스케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구성으로써 매우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2024년이 아직 2주나 남았는데 마치 벌써 마지막 날이 된듯한 느낌이랄까. 2024년 마지막 공연으로 선택하기 잘했다.ㅎㅎ(마지막 티켓 겟한 사람의 행복)

 

출처: 내 인스타 스토리ㅎㅎ



  그리고 2024년 마지막 공연 후기를 올리며.. 올해는 워낙 정신이 없어 공연 후기를 잘 못 올렸는데, 찾아오는 2025년에는 더 많은 후기를 올릴 수 있기를..!(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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