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나 전시 보러다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솔직히 국악계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아는 사람도 많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국악 공연 후기는 공개적으로 잘 안 올리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고 온 국립국악원의 <사직제례악> 공연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건 안 올릴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사직제례악은 조선시대 땅과 곡식의 신에게 올리던 제사에 사용되던 악가무 일체로, 종묘제례와 함께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많은 우리의 문화가 그러하였듯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직 제례 역시 단절되었었다. 근래에 들어 이를 복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았는데, 긴 노력 끝에 국립국악원은 2014년 당시 정조 대 사직서의궤를 바탕으로 사직제례를 복원하여 무대화한 바가 있다. 그리고 꼭 10년이 지난 올해, 국립국악원은 대한제국의 예법을 망라한 대한예전을 통해 대한제국 시기의 사직제례를 복원하여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내가 후기를 남기고자 하는 <사직제례악> 공연이다.
사실 사직제례악은 국악 전공자들에게도 그리 친숙하지는 않다. 2010년대에 복원 연주가 이루어졌으니 학창 시절 교과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배우지도 못하였고, 아악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연주해볼 기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국악은 계통에 따라 아악, 당악, 향악으로 나눈다. 아악과 당악은 중국에서 들어온 음악이고, 향악은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이다. 음악 계통에 따라 사용되는 악기 역시 다른데, 내가 전공하는 가야금을 비롯하여 잘 알려져 있는 거문고, 해금, 대금 등은 모두 향악기에 속하는 반면, 제례악에는 주로 편종, 편경, 노도 등의 아악기가 편성된다.
그래서 <사직제례악>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부터 '이건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매년 사직단에서 연행을 하고있고, 몇 해간 바로 그 옆의 도서관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잠깐씩 보기는 했다. 그러나 전체를 다 본 적은 없어서 기대 만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공연은 강강강추였다.
사실 제례악 공연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제례악의 음악적 특성과 공간적 제약 때문이었다. 제례악은 국악 공연 중에서도 지루하다 느끼기 쉬운 분야라 할 수 있는데, 판소리나 민요 등과 같은 민속 음악은 물론이고 풍류방음악이나 궁중 연례악보다도 절제된 멜로디와 알아듣기 어려운 한문 가사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또한 넓고 공개적인(담으로 둘러쌓여 있기는 하지만) 사직단에서의 의식을 실내 공간에서 진행한다는 점도 관객의 감각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음악과 제사, 미디어 아트의 융합이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감각의 공연이 완성되었다. 한국음악을 이용한 문화 콘텐츠 개발이 중요한 과제로 자리잡은 것 같았다. 솔직히 큰 관심 분야는 아니라 좀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전통성이 대중적인 콘텐츠화를 지향하다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는데, 이 공연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이 '관객과의 관계성 설정'이었다. 이 공연의 연출을 맡은 이대영 교수(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장)는 '좁은 극장과 단순한 형식의 제례악, 한자어로 가득찬 홀기'라는 문제점을 관객들을 신으로 설정하여 무대를 설계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1908년 사직대제가 명맥이 끊겼으니 현재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사직대제는 익숙치 않은 행사라 할 수 있다.(우리와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게다가 더 이상 일반적으로 농사의 풍흉에 직접적으로 생사가 오갈정도로 영향을 받고 있지 않으니 사직대제와 관객들 사이의 끈이 과거와 비교하여 현저히 옅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땅에서 단 위를 올려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보다 높은 관객석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니 시야도 다르다. 이러한 사회적, 공간적 특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어쩌면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들을 이 의례에 몰입시킬 수 있는 것은 관객을 주신으로 설정하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전통과 그 의미의 무게를 가져가면서도 이를 공연 콘텐츠화하는 것,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쩌면 발칙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부분이었다.
7월 11-12일에 걸쳐 공연된 <사직제례악>은 단 이틀만 이것이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목요일에 공연을 보러갔는데, 다음날 일정이 있어 이튿날 공연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물론 양일 거의 모든 좌석의 티켓이 팔려 표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을테지만ㅠㅠ) 벌써부터 '또 언제 공연 안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국악원은 앵콜 콘서트(?) 안 할런지 힝구..
꼬박 10년만의 사직제례악 공연,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몰라 더 기다려진다. 제발 이번에는 좀 더 빨리 돌아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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